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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431

오직 하나님을 바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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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 “그러므로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우리는 한 세상 살면서 자신의 삶의 행복과 영광을 위하여 무던히 달리고 달린다. 조금이라도 게으르고 처지면 여차 없이 밀려나 낙오자가 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인생은 전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 바울은 성경의 예증을 들며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9:13) 증거하였다. 놀랍게도 이 말씀은 두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신 말씀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그들의 인생의 모든 것을 모두 아셨으며 미리 정하셨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 모든 영혼의 비밀을 알고 계신 것이다.

 

역사적 사실만으로 볼 때, 우리는 이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생각하건데 좀팽이 같고 시기질투 투성이 야곱은 사랑을 받을만한 자가 못되고, 오히려 붉은 몸에 털이 넉넉하여 사냥을 즐기는 호탕한 에서에게서 남자다운 냄새가 풍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14) 답하였다. 이는 선택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언급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설혹 내가 태어남으로부터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해도 나를 지으신 하나님은 완전하시며, 설혹 내가 사람보기에 형편없다 해도 선택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나의 시작과 끝을 모두 아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자신에 대한 하나님을 불평하고 있다. 자신의 일이 풀리지 않든가 어떤 불의의 사고나, 큰 병이라도 얻으며 모든 불평을 하나님께 쏟기 일쑤이다. 나 역시 철없던 시절 부모를 원망하며 나를 왜 이런 모양으로 낳으셨느냐 불평을 하였다. (철딱서니 없는 아들을 보는 어미의 가슴은 숯검정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창조자이신 하나님 앞에 이러한 논리로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인간은 극한 한계 속에 있어 영원의 세계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예정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고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니라. 주님의 말이니라"(55:8) 말씀하셨다.

 

인간의 시작은 죄인으로 시작해서 죄인으로 끝난다. 성경은 이미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라고 증거하였다. 따라서 죄인 된 모든 인간은 멸망당해야 될 것이다. 그럼에도 죽어 마땅한 우리를 의롭다 하신 이를 불의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성경은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9:20) 책망하였다.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이니라(16) 증거하였다. 다시 말하여 내 인생의 흥망사가 나의 원함과 노력으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바울은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15) 라고 증거하였다. 이것은 우리에게 네가 그분은 의지와 결정에 따라 순종할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환경에 처할지라도 어떤 상황을 만날지라도, 어떤 사람을 만날지라도 우리는 오직 우리의 주 하나님을 믿자. 그가 나를 영화롭게하실 것을 믿자! 아멘 (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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